뮤지컬 레미제라블 캐스팅 고르려면 이렇게 보세요

얼마 전 레미제라블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 캐스팅으로 봐야 제일 좋아요?” 사실 이 질문이 제일 어렵습니다. 레미제라블은 배우 한 명의 노래 실력만으로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장발장, 자베르, 판틴, 에포닌, 마리우스, 앙졸라, 테나르디에 부부까지 각 인물이 서로 다른 무게로 무대를 떠받칩니다. 같은 넘버를 불러도 어떤 배우는 기도처럼 들리게 만들고, 어떤 배우는 싸움처럼 밀어붙입니다. 그래서 캐스팅을 고를 때는 ‘누가 유명한가’보다 ‘내가 어떤 레미제라블을 보고 싶은가’부터 잡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장발장은 목소리보다 삶의 결을 먼저 보세요
레미제라블 캐스팅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이름은 당연히 장발장입니다. 그런데 장발장은 고음 하나로 판단하면 꽤 아깝습니다. 물론 ‘Bring Him Home’의 섬세한 고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인물은 죄수, 도망자, 시장, 양아버지, 늙은 남자까지 긴 시간을 한 몸으로 지나갑니다. 1막 초반의 거친 몸, 코제트를 만난 뒤의 부드러움, 마지막 장면의 체념과 평온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저는 장발장을 볼 때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 저음에서 인물의 바닥이 느껴지는가. 둘째, 고음에서 과시보다 간절함이 먼저 오는가. 셋째, 대사 없는 순간에도 시간이 흐른 사람처럼 서 있는가. 레미제라블은 노래가 많은 작품이지만 장발장은 침묵에서도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되는 배우를 만나면 공연 전체가 훨씬 깊어집니다.
자베르는 악역이 아니라 신념의 배우를 고르는 겁니다
자베르 캐스팅은 취향이 많이 갈립니다. 어떤 관객은 강철 같은 성량의 자베르를 좋아하고, 어떤 관객은 질서에 갇힌 인간의 균열을 보여주는 자베르를 선호합니다. 둘 다 맞습니다. 다만 자베르를 단순한 추격자로만 연기하면 작품이 납작해집니다. 자베르는 장발장의 반대편에 선 인물이지만, 자기 기준 안에서는 놀라울 만큼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Stars’를 들을 때 단지 웅장한가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배우가 하늘을 향해 맹세하는 순간, 정말 자기 세계를 믿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지가 중요합니다. 후반부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관객이 같이 숨을 멈추게 되니까요. 장발장이 인간의 변화라면, 자베르는 변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입니다. 이 둘의 온도가 맞아야 레미제라블의 중심축이 단단해집니다.
판틴과 에포닌은 ‘잘 부름’보다 상처의 방향이 다릅니다
판틴과 에포닌은 둘 다 아픈 인물이라 비슷하게 묶이기도 하지만, 무대에서 해야 하는 일은 꽤 다릅니다. 판틴은 무너져 가는 몸으로 딸을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I Dreamed a Dream’은 큰 감정을 터뜨리는 넘버처럼 보이지만, 잘하는 배우일수록 처음부터 울지 않습니다. 버티다가, 버티다가, 어느 지점에서 더는 숨길 수 없게 되는 식으로 무너집니다.
에포닌은 조금 다릅니다. 에포닌의 아픔은 더 젊고, 더 즉각적이고, 그래서 더 날카롭습니다. ‘On My Own’도 단순한 짝사랑 노래로 처리되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좋은 에포닌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자존심을 같이 보여줍니다. 울면서도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지 않는 배우가 강합니다. 솔직히 이 배역은 음색 취향도 크게 탑니다. 맑고 투명한 에포닌을 좋아하는 관객도 있고, 허스키하고 생활감 있는 에포닌을 더 설득력 있게 느끼는 관객도 많습니다.
첫 관람이라면 조합을 보세요
처음 레미제라블을 본다면 한 명의 스타 캐스팅만 보고 고르기보다 주요 배역의 조합을 보는 게 좋습니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비,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청춘성, 에포닌의 결핍, 앙졸라의 에너지, 테나르디에 부부의 리듬이 한 공연 안에서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앙상블의 힘이 큰 작품입니다. 바리케이드 장면은 주연 한두 명이 아니라 무대 전체가 같이 뜨거워져야 살아납니다.
- 첫 관람: 안정적인 성량과 전달력이 검증된 조합이 좋습니다.
- 재관람: 장발장과 자베르의 해석이 다른 회차를 고르면 차이가 선명합니다.
- 넘버 중심 관람: 판틴, 에포닌, 앙졸라 캐스팅을 꼼꼼히 보는 편이 만족도가 높습니다.
- 드라마 중심 관람: 장발장과 자베르의 연기 결을 우선해도 좋습니다.
좌석도 캐스팅만큼 중요합니다. 레미제라블은 얼굴 표정과 군무의 스케일을 같이 봐야 하는 작품이라 너무 앞쪽만 고집하면 전체 구도가 아쉬울 수 있습니다. 초연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1층 중블 중후열이나 2층 앞쪽처럼 무대 그림이 읽히는 자리가 무난합니다. 배우의 호흡과 표정을 가까이 보고 싶다면 1층 앞열도 매력적이지만, 회전 무대나 군중 장면의 설계는 조금 덜 보일 수 있습니다.
재연과 새 캐스팅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오래 사랑받은 작품이라 관객 각자에게 이미 마음속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 캐스팅이 발표되면 기대와 걱정이 함께 나오죠. 근데 저는 이 작품이 계속 새 얼굴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발장은 시대마다 조금 다른 얼굴을 가져야 하고, 자베르의 신념도 지금 관객에게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판틴의 절망, 에포닌의 외로움, 청년들의 이상도 배우가 바뀌면 결이 달라집니다.
다만 비교할 때는 ‘예전 배우가 더 좋았다’에서 멈추면 아쉽습니다. 어떤 배우는 넘버의 완성도가 강하고, 어떤 배우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감정 연결이 좋습니다. 또 어떤 배우는 첫 등장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발휘합니다. 레미제라블 캐스팅을 고르는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악보를 두고도 누군가는 신앙처럼 부르고, 누군가는 죄책감처럼 부르고, 누군가는 마지막 남은 숨처럼 부릅니다.
제 기준에서 좋은 레미제라블 관람은 ‘정답 캐스팅’을 맞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싶은 장발장의 방향, 자베르의 온도, 여성 인물들의 상처, 앙상블의 밀도를 생각해 보고 그날의 조합을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캐스팅표를 볼 때 이름값만 보지 말고, 그 배우가 이 인물의 어느 부분을 잘 살릴 사람인지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레미제라블은 그렇게 골라서 보면 같은 작품인데도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